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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맛 없는 참기름…카페인만 쏙 뺀 커피…‘초임계’ 물질의 마술
작성자
백승희
작성일
2009-03-23
조회
2460
쓴맛 없는 참기름…카페인만 쏙 뺀 커피…‘초임계’ 물질의 마술
<2009년 3월 20일 동아일보>
주부 이영채 씨(서울 구로구)는 19일 봄나물 무침에 넣을 참기름을 사기 위해 대형 마트를 찾았다. 그런데 4년 전 처음 등장해 진열대 한구석에서 보았던 ‘초임계’ 참기름이 어느새 진열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일반 참기름보다 가격이 약 50%나 비싼 초임계 참기름이 이처럼 인기를 끄는 비결은 뭘까.
○ 디카페인 커피 만드는 비결
초임계 참기름은 일반 참기름보다 빛깔이 맑고 쓴맛이 적다. 노르스름한 참깨 색깔이 그대로 기름에 나타난다. 비결은 초임계 상태의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만들기 때문이다.
초임계 물질은 액체와 기체 등 두 가지 상태의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다. 높은 온도와 압력을 가해 만드는데 물은 섭씨 374도 220기압에서, 이산화탄소는 31도 74기압에서 초임계가 된다.
초임계 기체가 되면 공기처럼 확산이 빠르고 1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보다 좁은 공간에 침투할 수 있다. 액체처럼 다른 물질을 잘 녹여내기도 한다. 포도송이처럼 모인 기체분자 여러 개가 이곳저곳을 빠르게 움직이며 다른 물질을 둘러싸기 때문이다.
참기름을 만들 때 쓰는 초임계 이산화탄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참깨의 작은 틈으로 들어가 기름과 향 성분을 쉽게 녹여 낸다. 기존에는 기름을 잘 짜내기 위해 높은 온도에서 참깨를 볶아야 했다. 높은 온도에서 참깨를 볶으면 참기름의 색이 어두워지고 쓴맛이 생기는데 초임계 이산화탄소를 쓰면 이런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 가공 식품에 초임계 이산화탄소를 처음 이용한 것은 1970년대 카페인을 제거한 ‘디카페인 커피’를 만들면서부터다. 초임계 이산화탄소는 커피 원두로 들어가 크고 무거운 커피의 맛과 향 분자는 놔둔 채 작고 가벼운 카페인 성분만 녹여 빼낸다.
이윤우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30여 년이 흐르며 이산화탄소나 물을 쉽게 초임계 상태로 만들 수 있게 돼 요즘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초임계 이산화탄소는 ‘아낌없이 주는 쌀’을 만드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넥스트바이오사는 쌀을 백미로 만드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쌀눈과 쌀겨에서 현미 가루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기름 성분이 많은 쌀눈과 쌀겨는 잘 뭉쳐 가루로 만들기 힘들고 쉽게 변질돼 가축 사료로 쓰거나 버리곤 했다. 하지만 현미에 초임계 이산화탄소를 흘리면 현미의 겉을 덮고 있는 기름 성분만 제거할 수 있다.
김경중 넥스트바이오 대표는 “쌀눈에는 몸에 좋은 식이섬유와 항산화 성분이 많다”며 “초임계 이산화탄소를 활용해 쌀을 다각도로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 세탁소 의 초임계 드라이클리닝
초임계 공법은 환경 문제를 해결할 열쇠로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 세탁회사인 ‘행거스’는 초임계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드라이클리닝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드라이클리닝에 사용하는 ‘솔벤트’ 같은 약제는 심각한 수질오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따로 수거해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초임계 이산화탄소를 활용하면 섬유를 손상시키지 않고 때만 제거할 수 있다. 세탁 과정에서 사용된 이산화탄소는 재사용하거나 대기 중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유해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
심지어 유해물질을 정화하는 데 초임계 기술이 활용되기도 한다. 한화는 초임계 물속에서 유해물질을 빠르게 ‘태워’ 버리는 정화시설을 운용하고 있다. 보통 물에는 유기물이나 산소가 많이 녹지 않는다. 하지만 물을 초임계 상태로 만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즉 폐수에 산소를 넣은 뒤 초임계 물로 만들면 폐수 속의 오염물질과 산소가 높은 온도에서 타듯이 반응해 이산화탄소와 물만 남는 것이다.
초임계 기술은 첨단 과학에도 활용된다. 지름이 1nm에 불과한 탄소나노튜브 안에 다른 물질을 넣는 것은 쉽지 않다. 이 교수는 “초임계 물질을 활용해 탄소나노튜브 안에 다른 물질을 채우는 기술은 이미 가능하다”며 “초임계 기술이 첨단 과학의 발전에도 큰 공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초임계 이산화탄소는 ‘아낌없이 주는 쌀’을 만드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넥스트바이오사는 쌀을 백미로 만드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쌀눈과 쌀겨에서 현미 가루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기름 성분이 많은 쌀눈과 쌀겨는 잘 뭉쳐 가루로 만들기 힘들고 쉽게 변질돼 가축 사료로 쓰거나 버리곤 했다. 하지만 현미에 초임계 이산화탄소를 흘리면 현미의 겉을 덮고 있는 기름 성분만 제거할 수 있다.
김경중 넥스트바이오 대표는 “쌀눈에는 몸에 좋은 식이섬유와 항산화 성분이 많다”며 “초임계 이산화탄소를 활용해 쌀을 다각도로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 세탁소 의 초임계 드라이클리닝
“이산화탄소 세탁 가능” 미국에 초임계 이산화탄소를 이용한 드라이클리닝 세탁소가 늘며 ‘이산화탄소 세탁 가능(CO₂)’이란 표시를 넣은 옷이 등장했다. 사진 제공 행거스 |
미국 세탁회사인 ‘행거스’는 초임계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드라이클리닝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드라이클리닝에 사용하는 ‘솔벤트’ 같은 약제는 심각한 수질오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따로 수거해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초임계 이산화탄소를 활용하면 섬유를 손상시키지 않고 때만 제거할 수 있다. 세탁 과정에서 사용된 이산화탄소는 재사용하거나 대기 중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유해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
심지어 유해물질을 정화하는 데 초임계 기술이 활용되기도 한다. 한화는 초임계 물속에서 유해물질을 빠르게 ‘태워’ 버리는 정화시설을 운용하고 있다. 보통 물에는 유기물이나 산소가 많이 녹지 않는다. 하지만 물을 초임계 상태로 만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즉 폐수에 산소를 넣은 뒤 초임계 물로 만들면 폐수 속의 오염물질과 산소가 높은 온도에서 타듯이 반응해 이산화탄소와 물만 남는 것이다.
초임계 기술은 첨단 과학에도 활용된다. 지름이 1nm에 불과한 탄소나노튜브 안에 다른 물질을 넣는 것은 쉽지 않다. 이 교수는 “초임계 물질을 활용해 탄소나노튜브 안에 다른 물질을 채우는 기술은 이미 가능하다”며 “초임계 기술이 첨단 과학의 발전에도 큰 공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