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안경현의 '아름다운 잡초로 사는 법'
작성자
ㅎㅅㄷ
작성일
2008-05-26
조회
176
고고 허슬두~
[달인에게 묻는다Ⅱ]안경현의 '아름다운 잡초로 사는 법'
기사입력 2008-05-26 12:26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프로야구 선수들이 자신을 낮춰 부를 때 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좀 '잡초'라서..."
그러나 '잡초'라는 표현엔 폄하의 의미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툭하면 밟히고 무시당하기 일쑤지만 쉽게 꺾여 사라지지 않는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자부심이 숨겨져 있다.
두산 안경현(38)은 대표적인 '잡초형 선수'다. 고등학교 시절 예선이 있는 전국대회엔 나가보지도 못했고 대학(연세대)부터 테스트를 받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프로에 와서는 개인 기록 타이틀을 따낸 적도 없다.
그러나 안경현의 존재감은 결코 미미하지 않다. 수없이 많은 엘리트들 사이에서도 꿋꿋하고 묵묵하게 땀을 흘리며 누구보다 아름답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기다림 기다림 기다림
안경현은 1992년 두산에 입단했다. 그후 3년간 때려낸 안타는 고작 69개. 95년부터는 100경기 이상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97년엔 팔꿈치 부상을 당했고 98년부터는 용병 캐세레스에 밀렸다. 캐세레스가 다치기 전까지 그는 또다시 백업요원에 불과했다.
2001년 개막전까지만 해도 스타팅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었다. 서른이 넘어서도 제대로 된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던 셈이다. 실력도 부족했지만 이름값에서도 번번이 밀렸던 탓이다.
"그때는 운동을 열심히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시키는건 다하고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열심히 해보기도 했다. 작은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자꾸 밀리다 보니 목표의식이 사라지기도 했다. 기량도 더 늘지 않았다. 하루 하루 의미없이 지나갔다. 어떻게 버텼냐고? 그냥... 정말 그냥 시간을 보냈다. 그땐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사진=두산베어스
▲야구에 눈을 뜨다
안경현이 비로소 제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만남이 결정적 계기였다.
"헬스클럽에서 우연히 보디빌딩 선수 출신 트레이너를 만났다. 그때부터 몸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지만 그저 역기나 좀 드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어떻게 하고 왜 해야 하는지를 알게됐다. 타격은 아니었지만 수비가 달라졌다. 내가 놀랄 정도로 수비할때 몸이 잘 움직였다."
안경현은 욕심이 생겼다. 마침 캐세레스가 부상을 당해 기회가 찾아왔다.
문제는 바뀐 몸에 타격이 적응을 못한다는 점이었다. 갑자기 불어난 힘을 감당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때부터 안경현은 스스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금 몸 상태에서 가장 잘 칠수 있는 길을 찾는 수행의 시작이었다.
안경현은 "매년 조금씩 치는 방법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의 변화를 쫓다보면 난해한 타격이론에 조금은 쉽게 접근해볼 수 있다.
-2000년 : 힘이 생기니까 자꾸 세게만 치려고 했다. 시즌 들어가서도 별로 안 좋았다. 하지만 타점은 좀 많았다. 그래서 기회를 많이 얻게 됐고 조금씩 나만의 타격폼이 자리잡혔다.
-2001년 : 내가 나를 알고 치기 시작했다. 자꾸 준비동작에서 팔이 밑으로 떨어졌다. 타이밍이 늦었다. 그래서 어깨에 메는 동작 없이 계속 팔을 파워포지션(발사위치)에 놓으려고 귀 위까지 들고 있었다. 비로소 장타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2002년: 같은 폼으로 준비했었다. 하지만 운동을 많이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힘이 더 들어가기 시작하며 폼이 바뀌더라. 이번엔 간결하게 치기 위해 파워포지션을 낮추고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2003년 : 초반에 안 좋았다. 아예 파워포지션 까지 가는 동작을 없애고 그냥 들고있는 자세에서 공 맞는 자리까지 아무 동작없이 빨리 간다는 생각으로 쳤다. 스윙은 이때가 제일 좋았다.
-2006년 : 안타는 좀 쳐도 장타력이 줄어드는게 불만이었다. 간결하게만 하다보니 볼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짧아 제대로 힘을 못 줬다. 승부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타이밍을 잡을 때 '하나,둘,셋'하는 리듬을 잡게 된다. 이 템포에서 '둘'에서 '셋'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길게 가져갔다. 공을 좀 더 끌어놓고 칠 수 있었다.
김용달 LG 타격코치는 "우리나라에서 폼의 변화 없이 꾸준하게 칠 수 있는 천재는 김동주(두산) 정도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은 반대로 변화를 주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안경현은 이에 대해 "옆에서 보는 사람은 잘 모른다. 팔 위치 좀 바꿨다고 알아채기 쉽지 않다. 자기가 알아야 한다. 뭘 하고싶은지 생각하고 그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서 자기 것을 만들어야 한다. 의존만 해선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두산베어스
▲미러클 그리고...
두산 팬들이 안경현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만는 두개의 홈런이 있다.
2000년 LG와 플레이오프 6차전 9회 2사 후 동점 홈런. 그리고 2001년 6월13일 잠실 해태전 연장 10회말 역전 끝내기 스리런 홈런이 그것이다.
이 홈런들과 '미러클 두산'은 사실상 같은 의미로 쓰인다. 안경현 역시 그 순간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먼저 2000년 플레이오프. "장문석은 컨트롤이 아주 좋은 투수가 아니었다. 볼카운트 2-3가 됐는데 변화구는 없다고 생각했다. 3번 연속 파울이 됐다. 타이밍이 점점 앞으로 맞기 시작했다. 결국 또 직구였다. 맞는 순간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2001년 해태전. "처음에 번트 사인이 났다. 볼인줄 알고 뺐는데 스트라이크가 됐다. 번트 사인은 취소됐다. 변화구를 노리진 않았다. 직구 타이밍으로 스윙이 나갔는데 공이 내 몸쪽에서 틀어지는 순간이 길게 보이더라. 나도 모르게 스윙이 나갔는데 그게 넘어갔다."
안경현은 말을 좀 더 이어갔다. "커브 노리겠다 슬라이더 노리겠다... 이렇게 노리고 치는건 힘들다. 빠른볼 노리고 나가다가 걸려서 치는게 옳다. 핵심은 하체다. 어깨를 끝까지 닫아두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선 하체가 받쳐 주고 있어야 한다. 직구 타이밍에 두 다리가 먼저 반응을 시작하며 준비해야 변화구에도 대처할 수 있다."
▲덕아웃 속 안경현
안경현은 올 시즌 출장기회가 크게 줄었다. 그라운드에 선 시간보다 덕아웃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그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안경현은 "글쎄... 듣는 후배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지켜보며 느낀점들을 말해주곤 한다. 내가 경험했던 실패를 후배들이 반복하는걸 보고만 있을 순 없는 일 아닌가.
얼마전엔 (김)현수가 자기가 의도하는 타이밍이 아닌데도 치더라. 그것도 볼 카운트 유리하거나 초구때. 감이 좋고 너무 자신있어 그렇다. 하지만 자꾸 그렇게 치다보면 폼이 나빠지고 타이밍이 흐트러진다. 잘 맞을 때 일수록 스윙이 커지지 말고 의도하지 않는 타이밍에서 치지 말라고 조언했다. (민)병헌이는 안 맞으니까 자꾸 상체가 쪼그라들더라. 당당하게 하라고 해줬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쑥쓰러운 듯 한마디를 보탰다. "나는 실패가 많았던 선수다. 그래서 저러면 안되는데... 하는건 많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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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에게 묻는다Ⅱ]안경현의 '아름다운 잡초로 사는 법'
기사입력 2008-05-26 12:26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프로야구 선수들이 자신을 낮춰 부를 때 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좀 '잡초'라서..."
그러나 '잡초'라는 표현엔 폄하의 의미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툭하면 밟히고 무시당하기 일쑤지만 쉽게 꺾여 사라지지 않는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자부심이 숨겨져 있다.
두산 안경현(38)은 대표적인 '잡초형 선수'다. 고등학교 시절 예선이 있는 전국대회엔 나가보지도 못했고 대학(연세대)부터 테스트를 받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프로에 와서는 개인 기록 타이틀을 따낸 적도 없다.
그러나 안경현의 존재감은 결코 미미하지 않다. 수없이 많은 엘리트들 사이에서도 꿋꿋하고 묵묵하게 땀을 흘리며 누구보다 아름답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기다림 기다림 기다림
안경현은 1992년 두산에 입단했다. 그후 3년간 때려낸 안타는 고작 69개. 95년부터는 100경기 이상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97년엔 팔꿈치 부상을 당했고 98년부터는 용병 캐세레스에 밀렸다. 캐세레스가 다치기 전까지 그는 또다시 백업요원에 불과했다.
2001년 개막전까지만 해도 스타팅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었다. 서른이 넘어서도 제대로 된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던 셈이다. 실력도 부족했지만 이름값에서도 번번이 밀렸던 탓이다.
"그때는 운동을 열심히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시키는건 다하고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열심히 해보기도 했다. 작은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자꾸 밀리다 보니 목표의식이 사라지기도 했다. 기량도 더 늘지 않았다. 하루 하루 의미없이 지나갔다. 어떻게 버텼냐고? 그냥... 정말 그냥 시간을 보냈다. 그땐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사진=두산베어스
▲야구에 눈을 뜨다
안경현이 비로소 제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만남이 결정적 계기였다.
"헬스클럽에서 우연히 보디빌딩 선수 출신 트레이너를 만났다. 그때부터 몸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지만 그저 역기나 좀 드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어떻게 하고 왜 해야 하는지를 알게됐다. 타격은 아니었지만 수비가 달라졌다. 내가 놀랄 정도로 수비할때 몸이 잘 움직였다."
안경현은 욕심이 생겼다. 마침 캐세레스가 부상을 당해 기회가 찾아왔다.
문제는 바뀐 몸에 타격이 적응을 못한다는 점이었다. 갑자기 불어난 힘을 감당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때부터 안경현은 스스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금 몸 상태에서 가장 잘 칠수 있는 길을 찾는 수행의 시작이었다.
안경현은 "매년 조금씩 치는 방법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의 변화를 쫓다보면 난해한 타격이론에 조금은 쉽게 접근해볼 수 있다.
-2000년 : 힘이 생기니까 자꾸 세게만 치려고 했다. 시즌 들어가서도 별로 안 좋았다. 하지만 타점은 좀 많았다. 그래서 기회를 많이 얻게 됐고 조금씩 나만의 타격폼이 자리잡혔다.
-2001년 : 내가 나를 알고 치기 시작했다. 자꾸 준비동작에서 팔이 밑으로 떨어졌다. 타이밍이 늦었다. 그래서 어깨에 메는 동작 없이 계속 팔을 파워포지션(발사위치)에 놓으려고 귀 위까지 들고 있었다. 비로소 장타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2002년: 같은 폼으로 준비했었다. 하지만 운동을 많이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힘이 더 들어가기 시작하며 폼이 바뀌더라. 이번엔 간결하게 치기 위해 파워포지션을 낮추고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2003년 : 초반에 안 좋았다. 아예 파워포지션 까지 가는 동작을 없애고 그냥 들고있는 자세에서 공 맞는 자리까지 아무 동작없이 빨리 간다는 생각으로 쳤다. 스윙은 이때가 제일 좋았다.
-2006년 : 안타는 좀 쳐도 장타력이 줄어드는게 불만이었다. 간결하게만 하다보니 볼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짧아 제대로 힘을 못 줬다. 승부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타이밍을 잡을 때 '하나,둘,셋'하는 리듬을 잡게 된다. 이 템포에서 '둘'에서 '셋'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길게 가져갔다. 공을 좀 더 끌어놓고 칠 수 있었다.
김용달 LG 타격코치는 "우리나라에서 폼의 변화 없이 꾸준하게 칠 수 있는 천재는 김동주(두산) 정도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은 반대로 변화를 주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안경현은 이에 대해 "옆에서 보는 사람은 잘 모른다. 팔 위치 좀 바꿨다고 알아채기 쉽지 않다. 자기가 알아야 한다. 뭘 하고싶은지 생각하고 그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서 자기 것을 만들어야 한다. 의존만 해선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두산베어스
▲미러클 그리고...
두산 팬들이 안경현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만는 두개의 홈런이 있다.
2000년 LG와 플레이오프 6차전 9회 2사 후 동점 홈런. 그리고 2001년 6월13일 잠실 해태전 연장 10회말 역전 끝내기 스리런 홈런이 그것이다.
이 홈런들과 '미러클 두산'은 사실상 같은 의미로 쓰인다. 안경현 역시 그 순간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먼저 2000년 플레이오프. "장문석은 컨트롤이 아주 좋은 투수가 아니었다. 볼카운트 2-3가 됐는데 변화구는 없다고 생각했다. 3번 연속 파울이 됐다. 타이밍이 점점 앞으로 맞기 시작했다. 결국 또 직구였다. 맞는 순간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2001년 해태전. "처음에 번트 사인이 났다. 볼인줄 알고 뺐는데 스트라이크가 됐다. 번트 사인은 취소됐다. 변화구를 노리진 않았다. 직구 타이밍으로 스윙이 나갔는데 공이 내 몸쪽에서 틀어지는 순간이 길게 보이더라. 나도 모르게 스윙이 나갔는데 그게 넘어갔다."
안경현은 말을 좀 더 이어갔다. "커브 노리겠다 슬라이더 노리겠다... 이렇게 노리고 치는건 힘들다. 빠른볼 노리고 나가다가 걸려서 치는게 옳다. 핵심은 하체다. 어깨를 끝까지 닫아두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선 하체가 받쳐 주고 있어야 한다. 직구 타이밍에 두 다리가 먼저 반응을 시작하며 준비해야 변화구에도 대처할 수 있다."
▲덕아웃 속 안경현
안경현은 올 시즌 출장기회가 크게 줄었다. 그라운드에 선 시간보다 덕아웃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그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안경현은 "글쎄... 듣는 후배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지켜보며 느낀점들을 말해주곤 한다. 내가 경험했던 실패를 후배들이 반복하는걸 보고만 있을 순 없는 일 아닌가.
얼마전엔 (김)현수가 자기가 의도하는 타이밍이 아닌데도 치더라. 그것도 볼 카운트 유리하거나 초구때. 감이 좋고 너무 자신있어 그렇다. 하지만 자꾸 그렇게 치다보면 폼이 나빠지고 타이밍이 흐트러진다. 잘 맞을 때 일수록 스윙이 커지지 말고 의도하지 않는 타이밍에서 치지 말라고 조언했다. (민)병헌이는 안 맞으니까 자꾸 상체가 쪼그라들더라. 당당하게 하라고 해줬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쑥쓰러운 듯 한마디를 보탰다. "나는 실패가 많았던 선수다. 그래서 저러면 안되는데... 하는건 많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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