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정유회사에 대한 진실과 오해

작성자
기름쟁이4년차
작성일
2008-06-13
조회
11833
오랜만에 학부 홈페이지에 들어와보네요.


저는 응용화학부 9X학번 졸업생으로 현재 국내 모 정유회사 4년차 엔지니어입니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학생이라면 조금이라도 정유회사에 대한 관심을 갖기 마련인데


제대로 된 정보가 많지 않아 안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사실 정확히 알지 못하고 취직했는데 다행히 적성에 맞는 것 같아 회사생활


잘 하고 있습니다만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하차 하는 사람들도 꽤 된답니다.





주변 사람들은 취직한 선배들한테 직접 물어보는게 가장 빠르다고 하지만


사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래서 후배님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글을 남겨봅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하겠습니다만 그래도 편견이 있을 수 있으니


동종업계에 종사하고 계신 선후배님들의 주저없는 태클 환영합니다.^^








1. 정유회사 엔지니어는 뭐하는 사람들인가?





"정유회사 엔지니어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사실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혹자는 조정실에 앉아서 버튼만 누르면 된다, 밸브만 몇번 돌리면 된다 등등


말도 안되는 얘기들을 하는데 이 모든 것이 정보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선 엔지니어가 무슨 일을 하는가를 알려면 정유회사 공정을 운영하는 System을


알아야 합니다. 크게 "오퍼레이터"와 "엔지니어"라는 두 보직이 있습니다.





오퍼레이터(Operator)가 하는 일은 공장을 "돌리는" 것입니다. 조정실에 앉아서


버튼을 누르고 현장에서 밸브를 돌리고 하는 모든 일들은 다 오퍼레이터가 하는


일들입니다. 온도가 올리고 유량을 낮추고 압력을 조절하는 등등의 일이지요.


사실 공정을 운전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어렵고 어떻게 보면 쉬운 일이지만


정상 상태로 돌아가고 있는 공정은 운전 매뉴얼과 현장 경험에 따라 보통은 큰


문제 없이 잘 돌아간답니다.





오퍼레이터는 보통 전문대졸 분들이 많고 공정에 따라 1~4년간 쉬지 않고 돌기


때문에 교대 근무를 해야 합니다. 바로 이 교대 근무 때문에 수당이 많이 발생하고


그래서 연차가 조금만 쌓여도 상당한 연봉이 되는 것이지요.





그럼 엔지니어는 무슨 일을 하나요? 엔지니어는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입니다.


공정 엔지니어가 하는 일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저는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말하고


싶습니다. "경제성 극대화", "문제 해결", "공정 개선" 이 외에도 많지만 이것들이


가장 중요해 보이는군요.





"경제성 극대화"란 최소한의 운전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똑같은 유량의 Feed가 공정에 들어갔을 때 Main Product의


Yield를 최대한 높인다거나 같은 Product를 얻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을 최소화


하는 것들이 하나의 예입니다. 이를 위해서 엔지니어들은 공정의 많은 변수들이


(온도, 압력, 유량 등등) 어떤 값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계산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물론 표준 매뉴얼이 있긴 하지만 공장이 항상 표준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언제나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고 또한 공정 운전 여건도


계속 변하므로 항상 최적의 값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문제 해결"이란 공정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공정은


크고 작은 문제에 항상 시달리고 있답니다. 예를 들어 촉매 효율이 갑자기 떨어


진다던지, Pipe들이 막힌다거나, 열교환기의 Fouling으로 인한 효율 저하,


분리 Column의 효율 저하 등등 끝도 없습니다. 때때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공정의 Shutdown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


하는 것이 엔지니어의 큰 임무 중 하나이지요.





"공정 개선"이란 좀 더 적극적인 업무가 되겠네요. 가만히 두어도 잘 돌아가는


공정을 더 효율이 좋게 개조하는 것이지요. 제 생각에 가장 어려운 업무 중의


하나인 듯 합니다. 설명하기 참 애매합니다만 나중에 와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공정에 관련된 모든 업무들은 사실 엔지니어와 오퍼레이터가 항상 협조해야


한답니다. 비록 현장 오퍼레이터 분들이 이론적 지식은 부족하지만 십수년간


쌓이는 경험은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때때로 엔지니어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지적해 주기도 합니다. 이것이 엔지니어들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력 없는 엔지니어들 오퍼레이터한테 무시당합니다. 무시당하지 않으려


면 공정 지식으로 무장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많은 공부가 필요한 것이지요.








2. 근무 환경은 어떠한가?





이 부분도 사실 왜곡된 내용이 많습니다. 정유회사에 가면 칼출근에 칼퇴근하고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미리 말씀드리면


"택도 없는" 얘기입니다.





어느 회사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정유회사 엔지니어의 일을 그렇게


널럴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근무 부서나 여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의 경우


8~9시까지 일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더구나 공정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새벽 출근이나 밤 늦은 퇴근도 많고 주말도 없습니다. 공장에서는 언제나 "공정"


이 최고 상전입니다. 무슨 문제 생기면 즉시 달려가서 보살펴줘야합니다.





만약 신규 공정을 도입하는 Project에 발을 담그게 되면 토, 일요일도 없이 매일


11시~12시까지 일해야 합니다.





물론 복지, 연봉은 상당히 좋습니다. 어느 정유회사가 더 근무환경이 좋은가에


대해서 항상 동종 업계 사람들끼리도 말이 많습니다만 돈 때문에 다른 정유회사로


이직할 일은 없습니다. 그만큼 정유회사끼리는 대우가 많이 차이가 안 난다는


뜻이지요. 예전만큼 철밥통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업종에 비해 근무 연한도


긴 편입니다. 딱 꼬집어서 몇세까지 근무한다라도 얘기할 수는 없구요. 또 이런


것들이 우리가 40~50대가 되었을 때 어떻게 변할지 알 수도 없는 일이지요.





그리고 집에 수도권인 분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지방 근무일텐데요.


이건 정말 말씀드리기 힘들군요. 개인적인 차이가 많거든요. 적응 못하고 퇴사


하는 사람들도 있고 적응 잘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지방 근무가 할 만 한가요?"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지방 공장의 엔지니어들


입에서 나오는 얘기가 다 다를텐데 다 믿지 마세요. 자기가 겪어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다만 지방 근무하면서 사는 모습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어보면서


미리 상상해보고 대비할 수는 있겠지요. 너무 무책임한 글이 되어버렸네요.


그만큼 일반화시키기 힘들다는 얘깁니다.





지방 공장끼리 한번 비교해보면 "울산"의 SK, S-OIL, "여수"의 GS-Caltex,


"대산"의 현대오일뱅크가 있겠네요.





울산의 최대 장점은 대도시라는 점이지요. 더구나 부산도 가깝고요.


서울로 비행기도 자주 뜨고 좀 있으면 KTX도 직통으로 생깁니다.


서울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수, 대산에 비해 도시에 사는 혜택을 많이 누릴 수


있습니다.





여수는 울산에 비해 규모가 많이 작습니다. 서울까지 교통도 많이 불편하구요.


장점이라면 싼 물가 및 주변 자연 경관 정도겠네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제 생각에는 GS-Caltex가 연봉이나 복지 측면에서는 가장 나은 것 같습니다.


같은 연봉이라면 더 도시 지역인 울산을 선호하게 되겠지요.


(GS 다니시는 분들 답글 환영합니다~)





대산의 최대 장점은 바로 서울과의 인접성입니다. 그러나 최대 단점은


시골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이지요. 여수는 그래도 도시 냄새가 좀 납니다만


대산은 진짜 시골입니다.-_-;





여기서 제 생각을 하나 말씀드리면 서울까지 3시간 걸리나 5시간 걸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즉 중요한 사실을 지방 근무라는 것이지 서울에서 좀 더


가깝다고 본질이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수도권 출신 학생들이 지방 근무를 하게 된다면


울산>여수>대산의 순서로 추천하고 싶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유회사 엔지니어들끼리 한번 설문조사라도 해보고 싶네요.^^





종합해보면





-. 정유회사 고를 때 연봉/복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 비슷하다.


-. 근무 여건 역시 마찬가지로 비슷하다. 하는 일도 비슷하다.


(이 부분도 다른 분들의 적절한 태클이 필요한 것 같네요.^^)





따라서 정유회사를 선택할 때 (만약에 고를 수 있다면), 지역 문제가


중요해지겠네요.





"어느 회사 가면 우리과 선배가 많은가요?"라는 것도 궁금해하던데,


어딜 가나 많습니다 (특히 울산 지역). 아마 울산 지역의 두 정유회사에


우리과 사람들이 제일 많을 것 같네요. 요새는 서울대 나왔다고 무조건


특혜받는 것도 없습니다. 무조건 실력을 쌓는 것이 (+손바닥 비비기)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3. 학부 전공 과목과의 연관성은?





3,4학년이 되면 전공 선택 과목들이 많아집니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학점따기 힘들고 빡세다고 전공 선택과목들을 외면합니다.





그러나 정유회사 엔지니어로 일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과목들은 바로


이 과목들입니다. (석유화학회사, 엔지니어링회사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정유회사, 석유화학회사 등의 장치 산업에서는 학부때 배운 지식이


실제로 유용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공정 엔지니어들은 매우 축복받은 사람들이지요.





중요한 과목을 제가 생각하는 우선순위대로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3학년 전선일 것 같은데 공정의 핵심 중 하나인 Distillation Column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안 듣고 취직하면 회사 와서 욕 먹고 책 사서 공부해야


합니다.











반응공학1에서 배우는 CSTR, Batch 종류의 Reactor는 정유공장에 없습니다.


정유공장 Reactor의 90%이상을 담당하는 Fixed-Bed Reactor, RFCC 공정에


사용되는 Fluidized-Bed Reactor 모두 반응공학2에서 배웁니다.


당장 수업 안듣는다고 회사에서 일하는데 지장은 없습니다만 역시 욕먹으면서


새로 배워야합니다.











공장의 제어 System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PID Controller의 기초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공정제어 시간에 배웁니다. 역시 공부 안하면 회사와서 다 해야


합니다.











열전달의 경우 열전달의 복잡한 이론 지식보다는 열교환기 이해를 위해서


기본기를 닦고 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필이니까 다들 열심히 하시겠지요?











제가 4학년때에는 문상흡 교수님이 강의하셨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엄청나게 유용한 과목입니다. 실제 공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는 수업이기도 하구요. 공장에서 촉매에 대해 깊이 배울 기회가 별로


없는데 학부때 공부해놓으면 정말 둘도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됩니다.











공정열역학을 못 듣는다면 물리화학1의 열역학 부분을 열심히 하면 됩니다.


열역학은 그 자체 이론보다는 분리공정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보면 되겠네요.











이 두 과목은 정유/석유화학 공정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종합 과목이 되겠네요.


이 두 과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리공정, 공정제어, 반응공학 등


앞에서 얘기한 과목들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론에 대한 지식 없이


기계적으로 Simulator를 이용하여 공정을 설계하는 것은 그냥 윈도우 프로그램


사용법 배우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공장에 대한 맛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는 유용한 과목들입니다.





이러한 전공과목들을 위해서 2,3학년 기초과목 (공정계산, 물리화학 등등)이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변에 전공과목 열심히 안해서 정유회사와서 고생하는 사람들 많이 봤습니다.


위의 과목들 열심히 안 했다고 해서 절대로 주눅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데, 공정 관련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해 놓으면


회사 와서 남들보다 항상 몇 발자국 앞서갈 수 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길어진 것 같은데 내용도 별로 없는 것 같군요..-_-;;


결국 선택은 여러분들의 것입니다. 정유회사가 분명히 매력적인 회사인 것은


맞지만 적성에 맞지도 않고 서울에 살고 싶은데 왔다가는 분명히 사표 씁니다.





취직을 앞둔 후배님들, 제 글을 읽고 정유회사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이라도


높아졌기를 바라며 끝으로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선후배님들의 다른 의견도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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