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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을 팔며 산다는 것

작성자
최창균
작성일
2011-12-05
조회
503



한눈을 팔며 산다는 것
성석제 소설가
chosun.com  메신저입력 : 2011.12.04 23:10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 함께하는 스마트폰 없는 일상 생각하기 어려워
작은 화면에 집중하다 보면 선정적 영상과 자극적 말에 휘둘려
맹목과 편협에서 벗어나려면 주변 둘러보며 균형 찾아야

 
휴대폰의 액정 화면이 커지고 스마트폰 보급이 2000만대를 넘어서 그런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사람들 대부분이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게 일상화되었다. 절반가량은 이어폰을 꽂고 있는데 표정으로 보아 상당 수준의 감정이입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하거나 뉴스를 보는 사람도 있다. 요즘 '대세'인 SNS를 하는 사람, 출근 전 뭔가 중요한 자료를 챙기는 경우도 있다. 물론 여전히 지하철 안에서 시끄럽게 통화하거나 그보다 더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있지만 이제 그들은 시대에 뒤처지고 '스마트'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게 되었다.

 

휴대폰은 원래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 사이에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이다. 그런데 이제는 연인끼리 만나서도 각자의 휴대폰 액정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관심이 있는 것을 찾아보고 몰입하고 게임을 하며 놀고 있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소통인지 알쏭달쏭하다. 현실의 연인은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만질 수도 없고 손안에서 굴리고 돌리고 튕기고 누르고 손가락으로 톡톡 쳐서 특정 부위를 확대해 보거나 보기 싫은 부분을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다. 다정해지기까지 일정한 시간과 절차를 요구하고 싫은 냄새를 피우기도 하며 내 말과 손짓에 거부반응을 하거나 상처를 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누구의 눈을 의식할 필요도 없이 어루만지고 쓰다듬을 수 있으며 진동이나 경쾌한 소리로 일일이 반응해온다. 싫으면 언제든 주머니나 가방에 집어넣으면 그만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어떤 애완동물보다, 아니 가족보다 더 가깝게 오랜 시간 함께하는 것이 스마트폰이다. 사진을 비롯해 문자 메시지와 통화 기록, 일정 같은 사적인 기록을 내 주변의 어떤 저장 장치, 누구보다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게 스마트폰이다. 갖가지 이모티콘과 영상 첨부 기능으로 실제의 상호 관계에서는 불가능한 감성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 역시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은 인생의 축소판, 신체 기관의 확장이라는 의미를 넘어 인생 그 자체가 되어가는 중이다. 스마트폰 없는 우리 일상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거리로 나섰을 때이다. 인도를 걸을 때는 물론 횡단보도 앞에 서 있을 때도 상당수가 휴대폰 화면에 눈을 고정하고 있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몰입도가 그만큼 높다. 그들이 어떤 신비한 영적 존재처럼 제3의 눈을 가지고 있지 않은 바에야 그들 자신처럼 휴대폰에 눈을 고정하고 걸어오는 사람과 충돌은 예정되어 있다. 부딪치고 나서 별문제가 없다면 "미안하다"고 서로 인사하고 지나치면 될지도 모른다. 같은 민족이 살아가는 좁은 공간에서 그런 정도는 양해가 가능하다. 외국이라면 그런 식으로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하고 거리를 걸어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횡단보도를 건너면서까지 계속 시선을 스마트폰에 고정하고 있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차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흔히 보게 된다. 횡단보도니까 보행자의 권리가 우선이고 모든 차량이 무 조 건 멈추지는 않는다. 차에는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는 보행자와 그렇지 않은 보행자를 식별할 수 있는 눈이 달려있지 않다. 이렇게 발생하는 횡단보도 사고는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에 피해가 더 크다.

 

더 큰 문제는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하는 게 일상화된 상태에서 일어난다. 의식의 일시적 맹목(盲目)으로 사고(思考)가 스마트폰 화면 속에 고정·협착·매몰되면서 일어나는 사고(事故)다. 작은 화면에 집중하다 보면 주변이 보이지 않고 그 속의 선정적인 영상과 자극적 언사만이 진실인 양 오해할 수 있다. 진지하고 숙고를 요구하는 패러다임은 살아남기 어렵다. 찬·반이 갈리는 논점은 각자의 주장만으로 고조되고 거의 반드시 충돌을 낳는다. 그 결과 입에 담기도 힘든 폭언과 충혈된 주장이 작은 스마트폰 화면 속에 난무한다.

 

어느 분야에든 지나치게 몰입하고 기울어지는 것은 우리를 편협하게 만든다. 그에 대한 대책은 가끔 주변을 둘러보고 한눈을 팔며 사는 것, 그럼으로써 균형과 안정을 되찾는 것이다. 책을 읽다 눈을 돌릴 때처럼 하늘을 보고 아이들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에 감동하는 것, 그런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로 만든 스마트폰이라 해도 진실한 우리 인생의 일순간이나 한 호흡조차 대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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