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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政에 목소리 높이는 과학자들

작성자
최창균
작성일
2011-12-19
조회
602



[조선일보 아침논단] 國政에 목소리 높이는 과학자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 및 과학커뮤니케이션
조선블로그MSN 메신저입력 : 2011.12.18 22:36

 

과학기술 중시하면 발전하고 그렇지 못한 사회는 쇠망
민주화된 우리 사회에서 과학기술은 주변으로 밀려나…
과학자가 국가 현안에 앞장서며 합리적 해결책 제시해야

 

 
 국정(國政)의 중심에서 밀려나 버린 과학기술의 위상을 바로잡기 위해 과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선다. 지난 13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 17개 과학기술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출범한 '대한민국과학기술대연합'(대과련)이 그 시작이다. 과학지식의 증진을 통해 선진국의 국격(國格)을 갖추고, 기술혁신을 통해 국가 현안을 해결하고, 과학적 합리성을 통해 정의로운 희망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불확실한 미래에 절망하는 청년에게 희망을 주고, 양극화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책을 마련하고 실천에 옮기는 일에 과학자들이 직접 발을 벗고 나서겠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놀라운 발전을 실현시킨 주역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과학기술인들은 지금 절망하고 있다. 부총리 부서로 승격됐던 과학기술부가 '교육과 과학기술의 통합'이라는 황당한 궤변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정부 출연 연구소들은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휘발유 원가에 대한 상식도 갖추지 못한 장관이 에너지 정책을 송두리째 망가뜨리고 녹색성장의 꿈을 허공으로 날려버려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과학기술인들의 초라한 모습이다. 민주화된 과학기술 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에서 정작 과학기술은 주변으로 밀려나 버린 것이다.

 

우리 사회를 더 이상 반(反)과학적 정서에 빠져버린 정치인과 관료들에게만 맡겨 둘 수 없다. 과학기술계가 느끼고 있는 절박감과 위기감은 절대 공연한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정한 사회는 발전하고, 그렇지 못한 사회는 망한다는 것은 명백한 역사적 교훈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성과가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언제까지 과학기술에 집착해야 하느냐는 불평도 냉혹한 현실을 외면한 어리석은 넋두리다. 이제 과학자들이 단순히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수준을 넘어서 스스로 국정의 현장에 뛰어들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총선과 대선에 참여하는 정당들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는 청년 실업과 양극화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과학기술 진흥의 구체적인 정책 구상을 밝혀야 한다. 총선에서 과학자를 일정 비율 이상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하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과학자 개인의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국민들도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꿈과 희망은 과학기술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맹목적인 '친(親)환경'의 환상으로는 진정한 녹색성장의 꿈을 달성할 수 없다.

 

과학기술계의 목표와 비전은 분명하다. 과학자가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는 것이 과학자가 바라는 과학기술 중심사회가 아니다. 과학자가 과도하게 존경받고 우대받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과학적 '합리성'이 인문학적 '상상력', 예술적 '창조성'과 적절하게 어우러져서 불합리한 독선(獨善)과 아집(我執)을 용납하지 않는 합리적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전설이나 신화에 지나지 않는 2000년 전의 낡은 세계관을 하루빨리 청산하고, 이제는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현대과학적인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적 인문학과 예술이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한류(韓流)'가 넘쳐나는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

 

법률가들이 모두 법정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듯이 모든 과학자가 연구실과 실험실을 지켜야 할 이유는 없다. 오늘날 강조되고 있는 다양성은 과학기술계에도 적용된다. 과학자가 직접 감당해야 할 일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새로운 기술을 상업화하는 벤처기업도 과학자의 몫이고, 과학기술적 이슈에 대한 국내외적 논란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일도 과학자의 몫이다. 첨단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위험을 경고하고 감시해주는 활동에도 과학자의 참여가 필요하다. 예술과의 융합도 중요하다.

 

그런데 정치 분야만 유독 과학자의 참여가 불필요한 성역일 수 없다. 오히려 과학기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정치에서 과학자가 해야 할 역할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과학적 세계관의 변화가 법과 제도에 반영되어야 하고, 사회적 갈등의 해결에도 과학적·합리적 사고방식이 요구된다. 더욱이 합리성에 익숙한 과학자의 참여는 불합리와 독선에 의한 분열과 갈등으로 썩어가고 있는 정치를 살려내는 새로운 바람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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