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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100년 수도사업-윤제용

기로에 선 100년 수도사업 2008년 9월 11일 중앙시평


9월 1일은 근대적인 수돗물이 공급된 지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1903년에 고종 황제가 특허권을 내주고, 이를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가 지금은 수도박물관 자리가 된 뚝도(뚝섬)에 취수시설과 정수장을 짓고 1908년 서울 사대문 안과 용산 일대 주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당시 염소 소독도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염소 소독을 실시한 것이 1880년대인 것을 고려하면 그리 뒤진 것도 아닌 셈이다. 대한제국의 운명이 일제 식민주의 침략에 풍전등화 같았던 시기였지만 서구 기술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 수도 보급률은 광복 이후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해 1976년 무렵에는 급수 인구가 40%를 넘었다. 2006년에는 전국민의 91%에 이르렀다. 도시 지역 보급률이 97%에 달한다.
 수돗물 생산기술은 인류 문명에 기여한 10대 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 20세기 인간 수명이 30년씩이나 연장된 것은 깨끗한 물이 공급된 데서 찾을 수 있다. 수돗물 없는 현대인의 생활이란 상상할 수 없다. 집집마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수돗물은 먹는 물은 물론 음식 조리·세면·샤워·화장실 용수 같은 다양한 편의를 제공한다. 단 하루만 수돗물이 나오지 않을 때 겪게 되는 불편함과 끔찍함을 떠올린다면 수도 공급의 공공성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상수도 사업은 기로에 서 있다.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던 수도사업은 90년대 이후 부정 약품 사용, 중금속·바이러스 검출, 수질 검사결과 조작 같은 갖가지 사건·사고 탓에 낙후된 분야로 인식되는 듯하다. 낮은 수돗물 음용 비율과 해가 다르게 성장하는 정수기·생수 산업은 수도분야의 단면을 보여준다.
 규모의 경제가 없고 재원과 전문가 부족에서 오는 질 낮은 수도서비스는 특별시·광역시에서보다 시·군 단위에 속해 있는 중소규모 정수장에서 두드러진다. 하루 수돗물 생산량 10만㎥ 이하가 164개 지자체 수도사업체 중 88%에 이른다. 농어촌 지역의 수도공급은 40%를 겨우 웃돌고, 수돗물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인구도 230만 명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성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수도 분야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를 두고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공감대가 이뤄지지 못한 것 같다. 정부는 비효율적인 수도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선 민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물산업도 잘하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성장동력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국민 정서는 그렇지 않았다. 생존과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먹는 물로 이익을 남기고 장사를 한다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또 동의하지 않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방식에 대해서도 거세게 반발했다. 그래서 정부는 한 발 물러서서 민영화가 아니라 민간위탁을 하겠다고 했지만 한번 불신받은 정책은 제 갈 길을 찾지 못했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민간위탁도 작전상 후퇴일 뿐 민영화의 전 단계라고 주장하며 반대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오해도 있고 억울한 면도 없지는 않다. 결국 환경부는 2일 민영화에 논란이 된 물산업지원법(가칭) 제정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상호 간의 불신과 잘못된 수순이 낳은 결과다. 애당초부터 중소 규모 정수장 수도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수도사업 구조조정을 통한 광역화나 낙후 지역 수도 공급을 확충하는 일을 우선하였다면, 그리고 차근차근 국민의 이해를 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산업육성과를 만들고 물산업지원법을 만들어 물산업 육성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지식경제부가 아닌 ‘환경부’가 나설 만한 일이었는가도 따져볼 문제다. 이런 일들이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진정성을 의심받고 혹시 수도 서비스 개선은 빌미거나 뒷전이고 수도사업을 민영화해 일부 기업에 이익을 가져다 주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케 한 것은 아닐지.
 이제는 풍전등화의 위기에서도 수도사업을 받아들인 조상의 지혜를 생각하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때다. 현재 수도 분야의 시급한 문제는 열악한 중소 규모 정수장의 효율 향상과 서비스 개선이며 이와 더불어 낙후 지역, 농어촌 지역의 수도 보급률을 높이는 것이다. 이는 민영화나 민간위탁이 이뤄지기 전에 정부와 지자체가 먼저 나서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리고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 물산업을 육성해 나가는 것이 수돗물 100년 역사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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